2009년 2월 20일 금요일

netbook 유감

OLPC (One Laptop Per Child)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OlpcGreenLaptopRCOM222.jpg

미국 MIT의 네크로폰네 교수가 주창한 개념으로 국민 소득이 낮은 국가의 어린이들의 정보 접근성을 보장해 주고자 laptop 한 대 가격을 100달러에 맞추어 생산, 보급하자는 운동이다. 이는 토플러 등이 주장한 미래 사회에서 정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즉, 점차 정보에의 접근과 그 quality가 부의 향방을 좌우한다는 것인데, 지금처럼 산업화가 진행되지 않은 시기에도 정보의 중요성은 꽤나 중요했지만 요즘 시대에는 그냥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절대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는 미래 사회로 갈 수록 더 심해질 것이라 생각된다.

정보의 source가 한정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internet이라는 저렴하고 방대한 양의 정보의 바다가 우리의 주위에 있다. 예전에 비해 고급 정보로 접근하는 기회는 급격히 증가하고 반면 그 단가는 매우 저렴해 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우는 나라에 한정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만 하더라도 세계에서 broadband infra가 가장 잘 보급된 나라에 속하지만 이는 통신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 이다. 차상위 계층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은 internet은 커녕 신문 등의 매체에 접근하기 조차 어렵다. 우리나라도 이런 실정인데 우리보다 국민 전체적인 소득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들은 어떻겠는가. 정보에의 접근이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아무리 그들이 노력하더라도 그들은 결코 잘사는 나라가 될 기회조차 잡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럼 저개발 국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단지 그 나라에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 창안된 개념이 OLPC, 이른바 100달러 laptop이다. 고성능의 컴퓨터는 아닐지언정 저렴한 비용으로 internet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여 저개발 국가의 아이들도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제공하자는 운동이다. 운동을 시작할 당시 우리가 구입할 수 있는 보급형 laptop의 가격이 1,000 달러 내외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였고, 컴퓨터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더더욱 경제적으로도 탁월한 운동이라 생각된다.

2000년대 초반에 개념이 주창되었을 때, 고성능은 아니지만 저가형 및 저전력의 CPU를 탑재하고, battery의 재충전이 보다 쉬운 방법을 채택하고, 사용하기 편한 OS와 apps.를 탑재하자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 결과 반도체 계의 big brother라 할 수 있는 intel이 아닌 AMD가 그 partner로 참여하고, OS에서는 linux를 적극적으로 탑재하는 등의 활발한 운동을 펼쳤다. 한마디로 의 역할을 하기위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힘과 돈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100 달러의 economical limit를 극복하기 어려웠다는 것. 또 출범 이후, 상당히 강력한 경쟁자를 만나 현재 고전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 안타깝다.


amd_geode_cpu.jpg

한편 big brother 취급을 받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비난을 받던 intel Microsoft OLPC에 대한 대안으로 classmate라는 laptop computer 개념을 제안한다. 당연하게도 classmate PC는 intel의 한물 간 CPU와 MS의 저가판 Windows XP를 탑재한 OLPC와는 비교도 안되는 대강대충 개념이라 생각된다. OLPC의 경우, 베네주엘라나 에콰도르와 같은 남미 국가에서 정부 차원에서 구입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으나 classmate PC는 생산 자체를 했다는 의견을 들어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편협하게 생각해 본다면 나보다 못한 녀석이 좋은 일 하는 것이 보기 싫었다라고 생각되는 것은 너무 무리일까?

어쨌든 intel classmate의 실패(?), 그리고 야심차게 진행하였던 ARM으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아 개발한 strong ARM의 실패 등으로 mobile device 시장에 진입이 갈 수록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intel은 인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강력한 경쟁자라 생각되는 AMD에서 출시한 Geode CPU는 오히려 intel의 것보다 mobile device 시장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쩔 수 없이 ARM CPU에 대한 생산을 Marvell이란 회사에 너미고 나서 intel은 절치부심 했을 것이다. 아니면 strong ARM의 개발에서 습득한 저전력 기술을 바탕으로 저전력 x86을 만들고자 했을 것이다. 자신이 x86의 종가이니까.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들은 A100 series CPU를 출시하였고, 그 여세를 몰아 Atom이라는 저가형의 mobile x86 CPU를 개발한다. 게다가 이 Atom platform을 이용한 저가형 laptop 및 desktop의 개념 또한 제안하는데, 그 녀석들이 netbook nettop 이었다.

intel이 야심차게 발표한 새로운 concept는 언제나 다름없이 (UMPC 처럼) 실패할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작년에 불어닥친 전세계적인 경제 불황을 완전히 시장을 왜곡시켜 놓았다. 이 말도 안되는 netbook이 시장의 주류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처음에야 intel의 CPU를 선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Atom CPU의 본격적인 출시로 ASUS를 비롯한 각종 netbook vendor들은 Atom CPU를 탑재하기에 이르렀다. 그 선봉에는 ASUS EeePC가 있음은 언급할 필요 없이 아주 유명하다 생각된다. 300~500 달러 대의 저렴한 가격과 web surfing과 간단한 작업에 최적화된 저급의 부품 구성, 그리고 휴대에 중점을 둔 작은 size를 기치로 내 건 ASUS의 EeePC OLPC와는 target market이 전혀 다른 그저 장난감용 laptop 이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타고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어 고급 PC만을 개발 생산하던 SONY 조차도 비록 가격이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netbook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eeepc_r_open_stand_01_h.jpg

그저 netbook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computing power가 업체의 농간(?)으로 인해 과도하게 inflation 상태에 있다는 내 생각으로는 아주 적절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단지 game을 즐기기 위해 그토록 강력한 computing power를 소모한다는 것은 낭비가 아닐까? 업체에서는 multi tasking, multimedia 등에의 우위를 주장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computer를 이용하여 업무를 처리하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업체들의 광고나 수익 등을 이유로 소비자가 본인이 사용하지도 못할 과도하게 powerful한 computer를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면에서는 intel에서 주장하는 netbook nettop은 매우 적절하다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powrful computing에는 그만큼 많은 전력이 소모되기 마련이다. 에너지나 환경을 생각하더라도 적절한 성능의 computer를 사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비용은 당연하고....

그러나 문제는 netbook의 등장으로 인해 OLPC의 개발 및 보급이 차질을 빚은 것은 큰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세계적인 경제 상황이 OLPC와 같은 project에 신경을 쓰기 힘들 게 한 것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netbookOLPC에 대한 선진국 사람들의 관심을 식히는 데 큰 몫을 담당한 것이 사실이라 생각된다. (intel은 진정 big brother?) 더욱이 open source S/W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OLPC와는 달리 netbook의 경우 closed platform의 대표 명사인 MS windows XP를 채용한 모델이 대부분이다. 이에 따른 비용 증가나 주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OLPC 개념을 상당부분 무너뜨린다고 생각한다.

현재 Amazon이나 ebay에서 OLPC를 구입하려면 두대 값을 지불해야 한다. 한대는 내가 갖고 다른 한대는 저개발 국가의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식이다. 착한 소비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global economic crisis는 '개인주의 (personalism)'와 '이기심 (selfishness)'를 조장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버렸다. 물론 더 잘 사는 사람은 경제적인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더 못 사는 나라의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서로 돕는 소비가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2009년 2월 19일 목요일

내 생활의 명품 (2) Apple iBook G4

최고의 computer란 어떤거?

iBook G4/Apple. Inc/ USA


ibookg4_front_2004.jpg

  ibookg4.jpg

누구나 computer를 사용하는 시대다 대한민국에서는 computer를 사용하지 못하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니...

수많은 computer 중에서도 나는 Apple에서 제조 판매하는 macintosh를 사용한다. 고등학교 때, 잡지랑 신문 광고에서 Power Macintosh를 처음 봤을 때. 국민학교 때, computer란 것을 처음 만졌을 때. 모두 무지개 색 사과가 새겨져 있었다. 누군가가 오른쪽을 베어먹다가 놔둔 사과... 8 bit Apple II 호환기종으로 computer란 것을 처음 배운 나는 6개월 정도 BASIC, Fortran, COBOL 공부를 하다 그만 둔 후에는 programming을 더이상 하지 않았다. 대학 시기까지... 사실 그 시절에 computer를 배운다는 것은 바로 programming을 배운다는 것이었기에 computer를 사용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원하는 program을 짠다는 것과 동의어 였다. programming을 그만 둔 2년 정도 후에, 아버지는 당시에는 획기적으로 토목 설계 분야에 computer를 접목시키고자 IBM AT 호환기종 PC를 구입하셨다. 전부터 16 bit computer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hard drive가 달린 녀석은 처음이었기에 굉장히 충격이었다. (그것도 무려 40MB) 게다가 당시에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black & green monitor가 아닌 black & white monitor였다. 본체는 지금의 tower形 desktop computer보다 훨씬 컸지만 그 녀석으로 집에서 game이란 것도 하고 (난 당시에 오락실이란 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워드프로세서라는 application을 이용하여 영작도 하면서 즐겁게 사용하였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엔 사과마크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만 갔다.

대학에 와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결국은 macintoshcomputer를 손에 넣었고, 그 녀석으로 programming도 하고 아무튼 잘 썼다. 하지만 이녀석과의 인연도 얼마 안되어 그만 둘 수밖에 없었고 다시 IBM호환 기종으로 turn을 해야 했다.

각설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구입한 laptop computer가 바로 iBook G4이다. 신동품이라 주장하는 중고(?)를 구매했는데, 막상 받고 보니 중고가 아닌 box도 뜯지 않은 새거였다. 새하얀 몸에 12" display. 구입하자마자 RAM도 1.5 GB로 full upgrade 해 주고, 미국에서 Super drive도 주문해서 달아주었다. PowerPC G4 1.33 GHz의 CPU는 아주 빠르지는 않았지만 내가 사용하기엔 아주 적당한 laptop이었다. 무엇보다 polycarbonate 소재의 단단한 case는 휴대라는 laptop 본연의 자세에 아주 적당한 것이었고, scratch를 아주 싫어하는 내가 iBook에 신뢰를 갖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사실 당초에는 aluminium 소재의 12" PowerBook G4를 구입하고자 하였으나 적당한 제품이 나타나질 않아 iBook을 구입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iBook을 구입하길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aluminium 소재의 15" PowerBook을 사용할 때는 사실 Scratch 걱정 대문에 휴대가 꺼려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 사용하는 MacBook Air도 aluminium 소재여서 scratch나 찍힘 등이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polycarbonate 소재는 scratch나 찍힘의 걱정이 없다. 게다가 battery 관리에 신경을 쓴 탓에 구입한지 3년이 지난 지금도 3시간 30분 정도의 life span을 보여준다. 최신의 HD 영상물을 play 하지는 못하지만, 또 내가 좋아하는 football manager를 구동할 수도 없지만 여행의 동반자로는 딱이다.

지금은 MacBook Air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집에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우리 애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애들이 쓰기엔 이보다 좋은 computer도 없는 것 같다. 다인이 혜인이에게도 iBook G4는 좋은 친구다 되어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Specification

July 26, 2005 May 16, 2006
PowerPC 7447a (G4) 1.33 GHz
Soldered Integrated
133 MHz 1.33 GHz (Built-in)
Open Firmware 1 MB
64k 512k (on chip)
PC2700 DDR SDRAM 333 MHz
512 MB 1.5 GB
512 MB 1
Mobility Radeon 9550 DDR SDRAM
32 MB 32 MB
12.1" TFT XGA 1024x768
Mirroring Only* 1024x768
40 GB (4200 RPM) Ultra ATA/100
8X "Combo Drive" None
56k v.92 10/100Base-T
802.11b/g (Standard) 2.0+EDR (Standard)
2 (2.0) 1 (400)
None None
Full-size Trackpad
Notebook iBook (12-Inch)
M9846LL/A iBook G4 - Mid-2005
N/A PowerBook6,7
50 W/Hr LiIon 6 Hours
X 10.4.2 (8D37) Current
Classic Mode Only* Emulation Only
1.35 x 11.2 x 9.0.6 4.9 lbs (2.2 kg)
US$999 US$475-US$650

Spec data quoted from http://www.everymac.com

내 생활의 명품 (1) Rollei 35S

나와 이름이 같은 그분처럼 나도 나만의 名品을 좋아한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소중한 무엇인가가 있듯이...

그 첫번째로 Rollei 35 camera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Rollei 35: camera; West Germany/Singapore


r35s.jpg

우선 생긴 것은 사진처럼 아주 간단하게 생겼다. 크기도 굉장히 작다.

어렸을 적 우리집의 모든 사진을 도맡아서 찍었다. (서른 살 정도 먹은 것 같다.)

수동카메라여서 거리, 노출은 당연하고 셔터스피드와 film의 ASA 값까지 전부 지정해 주어야 한다. 특이하게도 flash와 연결을 하는 핫슈가 body의 아래에 있다.

이녀석의 가장 큰 미덕은 lens와 견고함!

우선 lens는 아주 좋은 quality의 것이 장착되어 있다. original version은 Carl Zeiss에서 생산한 Thessar F 3.5가 달려있다. 우리집의 Rollei 35s는 후에 Singapore에서 생산된 것인데 original 보다 밝은 Carl Zeiss Sonnar F 2.8이 장착되어 있다. original의 것은 사용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내가 사용하고 있는 Rollei 35s의 경우 F2.8의 밝은 lens를 가지고 있어서 어디에서 사진을 찍던 아주 깨끗한 quality를 보장해 준다.

body의 견고함은 또다른 미덕이라 하겠다. 수동카메라 이지만 부품 하나하나가 굉장히 견고하게 조립되어 있다. 서른 살을 먹은 내 Rollei 35s는 한번도 고장을 일으켜 본적이 없다. 크기에 비해 묵직하긴 하지만 오히려 이 점이 사진 촬영 시 적절한 지지 역할을 해 주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준다.


RolleiFl2.jpg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녀석이 생산될 때엔 수은전지가 아주 흔하던 시기여서 노출계에 사용하는 전지가 1.35v의 수은전지라는 점이다. 지금은 각종 환경 문제로 인해 이 배터리가 생산되지 않아서 구할 수가 없다. 미국의 Weincell이란 회사에서 같은 크기와 전압을 가진 알카라인 전지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의 한 수입상에서 수입을 하였는데 지금은 품절인 상태. 추가 수입은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내 Rollei 35s의 노출계는 function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Rollei35.jpg

현재 국내의 B카메라 수입상에서 Titanium version을 완전 신품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가격은 무려 1,600,000원대... original 95%의 중고품은 600,000원 정도로 거래되고 있는 것 같다. 신품의 가격이라면 PENTAX Canon의 보급형 dSLR을 렌즈까지 껴서 사고도 남을 가격이다. 하지만 Rollei 35의 매력은 이들 카메라를 포기하고도 남을 정도라고나 할까? 묵직하게 손에 잡히는 감각과 찰칵하는 느낌의 셔터는 수동카메라가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니까...


14.jpg

History of Rollei 35

Dr. Wasske가 1962년 고안하여 Leica에 생산 제의를 하였으나 거부당함. 이후 Rollei에서 생산 제안을 받아들여 1966년 서독에서 첫 생산을 하였으며, 이후 제조원가 등을 이유로 Singapore로 생산지를 옮김. 생산지를 옯기면서 lens를 더 밝은 제품으로 변경함 (Carl Zeiss Thessar F 3.5 --> Carl Zeiss Sonnar F 2.8)

생산년도와 생산국가 등에 따라 20개 정도의 variation이 존재.

Rollei

Rollei 35 이전에도 이 회사는 Rolleiflex라는 아주 멋진 120mm 이안리플렉스 중형카메라를 생산하였고, 지금까지도 이는 가장 사랑받는 중형카메라 중 하나이다. 카메라의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걸작을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Rollei社는 신제품의 판매 저조, 값싸고 품질 좋은 일본제 카메라의 공습, 그리고 갈수록 좋아지는 자동카메라의 등장으로 인해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고, 1995년 우리나라의 三星에 인수당하고 만다. 그러나 Rollei라는 회사의 철학과 브랜드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일까? 그들은 더이상 Rollei의 과거 명성을 잇지 못하고 역사 속에 Rollei가 잊혀질 정도로 브랜드를 사장하였다.(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임. 이런 면에서 80년대에 경영 상의 난관에 봉착한 Porsche三星이 인수하지 못한 것이 너무 다행이라 생각된다.)이를 안타깝게 여긴 독일과 스웨덴의 사모펀드에 의해 Rollei가 재인수되고 Rolleiflex와 기본적인 사진용품을 재생산하고 있다.

경영과 철학. 효율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분야와 본질을 추구하는 두 단어는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많이 벌어져 있는 것 만큼... 그러나 진정한 名品이란 이 두 가치가 반드시 공존해야만 태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三星과 LG의 전자제품을 名品이라 치켜세우기 바쁘다. 그렇지만 단순히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다고 해서 그것을 名品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Rollei라는 名品을 손에 쥐고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기업은 철학이란 것이 결여된 제품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