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일을 냈다. 사실 지금까진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젠 정말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축구에 관한 도사다. 진정한 도사... 거스 히딩크... 나는 그를 그저 A-급 감독으로 생각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2002년 월드컵은 상당한 홈어드밴티지를 등에 업고 이루어 낸 결과였고, 0405 챔피언스 리그 때는 멤버가 너무 좋았었다. 그리고 06 월드컵 때의 호주는 충분히 그럴만한 역량이 있는 멤버였기에 그의 능력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2년 한국 이전의 클럽팀 성적과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성적은 그에 대한 평가를 결정하는 데 큰 단초가 되었다. 사실 그는 98년 월드컵 때,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고 참가 하였다. 그 때의 멤버는 내 생각에는 88년 유로 선수권 이후로 최강의 멤버로 생각되었는데, 공격에는 당시 최상의 컨디션이던 베르캄프와 클루이베르트가 미드필더에는 다비즈와 시도로프, 그리고 코쿠와 데부어 , 오베르마스, 수비에는 스탐과 데부어, 누만, 라이지헤르 등 그 이름 면면만으로 당시 세계를 호령할 수 있었던 멤버였다. 사실 난 그때, 프랑스 보다는 네덜란드를 강력한 월드컵 우승 후보로 생각했는데, 지네딘 지단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멤버도 정말 훌륭하였지만, 프랑스의 전술이 지단 중심으로 되어있던 것에 반해, 네덜란드의 경우, 다양한 전술 운영 가능 선수 및 확실한 타겟이 있었기에 이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과의 예선전에서의 5:0 경기 후에는 이에 대한 확신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 멋진 네덜란드 대표팀은 브라질을 상대로 한 준결승에서 무릎을 꿇고야 말았고, 3,4위 전에서는 수케르의 크로아티아에게 마저 무저지는 무력한 모습마저 보였다. 또한 월드컵 이후, 스페인 프리메가리가의 감독에 도전한 그는 레알 베티스에서는 그런대로 괜찮은 모습을 보였을 지언정, 당시에도 화려한 팀이었던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다. 이런 그의 50대 성적은 그에 대한 평가를 아르센 벵거나 알렉스 퍼거슨 경과 비교하여 아랫 수준이라 평가하게 된 결정적인 근거임은 사실이다.
그가 러시아 대표팀 감독을 맡는다고 했을 때, 그가 보였던 행보는 사실 2002년 월드컵을 대비한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FA의 절대적이고 전폭적인 지지를 통한 선수단 구성 및 장악. 그리고 강력한 체력과 수비를 위주로 한 축구 구사는 역시 히딩크 공식이라는 느낌을 주기까지 하였다. 사실 풋볼매니져라는 게임을 하던 나에게 있어서 러시아는 훌륭한 유망주를 저렴한 가격에 데려올 수 있는 곳이었다. 게임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석유와 천연 가스를 팔아서 번 그 막강한 돈으로 자국의 리그를 유럽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시키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히딩크의 마법도 그 막강한 자금력에 기반을 두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푸른 혁명을 조정하는 로만 이브라모비치가 러시아판 히딩크 마법에 가장 큰 도움을 주고있음은 많이 알려진 사항이다.
그러나 히딩크의 성과 중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내 생각에는 결코 세계 축구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잉글랜드, 스페인, 네덜란드 등에서는 히딩크의 마법이 발휘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히딩크는 FA에 강한 압박을 가하여 국가대표 선수들을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자기가 원하는 만큼 조련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2년 우리나라도 그랬고, 지금의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이 FA의 need에 의해 국가대표 소집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수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클럽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큰 축구 선진국의 경우엔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한다. 특히 유럽의 리그가 막 끝나고 나서 시작되는 국제 축구 이벤트들 (월드컵이나 유로시리즈를 포함해서)의 경우, 대부분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살인적인 스케줄의 리그를 막 소화하고 난 후여서 부상도 부상이거니와 선수 개개인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닐 것이라 예상된다. 특이한 경우로 유럽의 리그 중간에 열리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의 경우, 선수들이 리그 중간에 차출되므로 네이션스컵에서는 최상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지만, 컵대회가 끝난 후에는 선수들의 컨디션이 저하되고, 심한 경우 큰 부상으로 이어져 리그로 복귀해서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 히딩크가 축구 선진국의 국가대표를 맡는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마법을 보여줄 수 있을까?
분명 히딩크는 내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편견을 뛰어넘는 훌륭한 축구감독이다. 그는 축구 전술이나 선수 조련 뿐 아니라 각종 언론 플레이나 심판 다루기 등 심리 게임 내지는 파워 게임에도 매우 능수능란하다. 하지만 그가 진정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제 축구 중상위권 국가가 아닌 강호의 고수들이 겨루는 판으로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최상위권 클럽팀의 감독을 맡는 것도 좋고, 축구 선진국의 국가 대표를 맡는 것도 좋다. 어쨌든 그의 명성에 걸맞는 팀을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결코 그는 미헬스나 크루이프, 베켄바워나 사키 심지어는 알렉스 퍼거슨이나 아르센 벵거, 카펠로와 같은 동시대의 감독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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